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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로 떠나는 아시아 여행 – 신의 은총과 인간의 의지

황경훈(아시아평화연대센터장)

신의 은총과 인간의 의지

지역이나 민족에 따라 좀 차이는 있겠습니다만, 예부터 사람들은 하늘을 신성한 것으로 여기고 길흉화복을 하늘이 하는 일로 생각한 듯합니다. 한·중·일 동양 삼국을 비롯해 아시아나 다른 대륙에서도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관습이 전통으로 자리 잡은 경우를 자주 보곤 합니다. 우리나라는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라는 애국가 가사만 보더라도 하늘의 존재가 우리의 삶과 먼 것 같으면서도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인도의 힌두교는 신으로 불리는 존재가 3억 명이 넘는다니 신이라고 해서 그 격이나 위치가 다른 듯도 한데, 어쨌든 사람들은 자신이 어려움을 당하거나 도움을 구할 때는 하늘에 빌고, 또 비는 정성에 따라 신의 은총을 받는다고 굳게 믿고 있는 듯합니다. 그런데 자신의 처지가 몹시 어렵고 힘든 것이 인간이 만든 제도나 구조에서 기인한 것인데도 이를 신의 은총으로 믿는다면 그 개인은 물론이고 사회와 나라의 발전에 도움이 될까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말이 나온 김에 다신교의 나라 인도로 여행을 떠나면서 이야기를 더 해보도록 하지요.

구두닦이에게도 정의를!

새벽 5시, 12살 난 수브라트 프란시스는 이미 일어나 나그푸르에 있는 한 기차역의 구두닦이 가게로 갈 준비를 한다. 인도 중부지방에 있는 나그푸르의 이 기차역은 그의 목소리로 아침에서 깨어난다. “광내요!” 아침바람이 그의 쑥대밭 같은 머리털을 스치고 지나가자 단추도 안 채운 지저분한 검은 셔츠 밑으로 그의 텅 빈 위장이 드러난다. 그는 지난밤을 경찰서 유치장에서 지냈다. 이 도시에는 프란시스와 같은 구두닦이 소년이 약 5천명이나 굶주림과 실의, 경찰의 학대에 고통받고 있다. 경찰은 프란시스와 다른 네 명을 붙잡아 날조된 혐의를 뒤집어씌웠는데, 철도법원은 이들에게 각기 100루피(약 3천 원)의 벌금을 매겼다. 함께 벌금형을 받은 키쇼르는 ‘철도경찰의 구두를 닦아주고 요금을 달라고 한 죄’로 전과자가 됐다고 했다. 프란시스는 자기들이 전에는 경찰에게 요금을 요구할 엄두도 못 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이들의 ‘디디(누나)’인 미나가 이들에게 정의를 위해 일어나라고 용기를 북돋은 다음에는 상황이 변했다고 했다. 그녀는 이들이 ‘가난하지만 의롭다’고 말한다. 미나는 인도 청소년복지연구소에서 구두닦이 소년을 위한 프로그램 간사를 맡고 있다. 이 연구소는 여러 종파가 같이 운영하는데 나그푸르의 길거리 어린이들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연구소의 마노하르 소장은 자신들의 활동에는 어린이들에게 약을 주고 경찰의 학대에 맞서 법률구조를 해주는 것이 포함된다고 말한다. 그들은 소년들에게 작업도구를 넣을 상자와 신분증을 준다. 또 기차 플랫폼에서 정기적으로 글자교육도 한다.

프란시스에 따르면 이 연구소의 도움을 받는 구두닦이 소년들 사이에는 나름의 불문율이 있다고 한다. 이들은 매주 각기 다른 기차, 플랫폼, 담당구역을 정해서 이를 지킨다. 역에서 일하는 75명 가운데 30명은 그날로 돌아오는 단거리 열차를 타고, 30명은 장거리 열차를 탄다. 카시나트는 “우리는 남의 구역을 침범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는 30살인데 초등학교를 중퇴한 뒤 14년 동안이나 구두를 닦아왔다. 그는 12~17살 사이가 70%를 차지하는 구두닦이들의 ‘수호자’이다. 그는 구두닦이들이 날마다 12시간씩 일한다면서 ‘심한경쟁’ 때문에 수입이 줄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의 가족은 나그푸르에서 좀 떨어진 빈민촌에 사는데, 그는 두 자식의 교육비를 위해 이 일을 계속 해야 한다고 했다.

이 연구소는 소년들에게 ‘서로의 꿈을 나눌 기회를 줌으로써’ 자신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계기를 주고 있다고 미나는 말한다. 그녀는 이들에게 우선 필요한 것은 ‘철도경찰과 반사회적 요소들로부터 보호받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나그푸르교구 청년위원회의 매튜 신부는 교회도 이들을 재정적으로, 사회적으로 돕기 위한 사업을 벌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위원회에서 일하고 있는 필로 수녀도 이 사업을 통해 이들이 범죄에 빠지는 것을 방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출처: 주간 「아시아 공동체」1995년 9월 4일 6쪽, 화제기사>

 

이 기사는 거의 10년 전에 있었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인도에서는 지금도 실제로 흔하게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고 합니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프란시스나 다른 구두닦이는 그나마 괜찮은 ‘직장’이 있는 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널리 알려진 대로 인도는 카스트라는 철저한 계급제도가 있어서 결혼도 같은 층위의 사람과 하고 그 밖의 생활양식 모두가 이것에 종속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하층카스트나 이른바 ‘불가촉천민’으로 불리는 달리트는 평생 신분상승을 꿈꾸기 어렵고, 더욱이 ‘윤회’ 사상에 뿌리박고 있는 종교문화 전통으로 그 신분이 대를 이어 세습된다니, 한번 천민으로 태어나면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가난과 소외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많은 인도인은 신의 은총을 많이 받는 길은 자신이 태어난 카스트 안에서 성실히 자기 일을 다 하다가 생을 마치는 것이라고 여긴답니다. 간혹 외국 언론을 통해서 접하는 불가촉천민 가운데에는 빨래만 하는 직업, 귀지를 파주는 직업, 동물이나 사람의 오물을 치우는 직업 같은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을 천직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과연 이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신의 직업을 ‘신의 은총’으로 생각하고 있을까요. 불가촉천민은 마치 에이즈 보균자나 나병 환자와 같이 ‘접촉하면 부정 타는’ 존재로 여겨져 물도 같이 사용할 수 없고, 이들이 다른 마을을 지나가려면 신발을 벗고 맨발로 가야 하는 처지라는데 그렇다면 신의 은총이 아니라 저주를 받았다고 해야 맞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힌두교 성직자나 정치가들은 ‘그건 인도를 잘 몰라서 하는 말’이라면서 인도 사람들 대부분은 카스트가 강요된 제도로서가 아니라 적합한 삶의 양식이라고 생각하며, 카스트제도는 인도헌법에서 이미 사라진 지 오래라고 주장합니다. 하긴 마치 이슬람을 믿는 이들이 일생에 한 번 아랍의 메카 성지를 순례하는 것이 평생소원이자 꼭 해야 하는 의무로 굳게 믿고 이를 행하듯이, 대부분이 힌두교인인 인도인은 죽기 전에 ‘이런저런 동물 사체가 떠다닐 정도로 더럽다는’ 갠지스 강에 가서 몸을 담그고 영혼을 정화하는 것이 의무요 일생일대의 행복이라고 보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제가 잘 모르면서 얘기하고 있는 듯도 합니다. 갠지스 강물이 그렇게 오염이 심하여 몸과 영혼을 ‘정화’하기는커녕 바이러스 감염이나 병에 노출될 확률이 높다는 과학자들의 보고가 있는데도, 그것에 개의치 않고 순례가 끊임없이 계속되는 것을 보면 법보다 더 견고한 것이 관습과 문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그래도 오늘 이야기의 구두닦이 소년들의 용감한 행동에 더 귀가 솔깃해지고 박수라도 보내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프란시스나 키쇼르가 경찰의 구두를 닦아주고 요금을 달라고 하지 않았다면 ‘전과자’가 되지는 않았을지 모르지만, 누구나 평등한 인간의 권리,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 권리를 요구할 생각은 하지도 못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영원히 구두닦이로 지내거나 아니면 더 상황이 나빠져 비인간적인 일을 하면서 평생을 보낼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을 듯합니다. 애초에 카스트는 인도를 정복한 아리안족이 토착민인 드라비다족을 통치하기 위한 수단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대체로 공감을 얻고 있는 학설이라는데 그렇다면 신의 은총을 받기 위해서는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이 카스트를 묵인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제도를 개선하거나 없애는 데에 힘을 보태는 일이 아닐까요? 독자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4년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