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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로 떠나는 아시아 여행 – 깨달음 뒤의 소소한 그러나 중요한 일상

황경훈(아시아평화연대센터장)

깨달음 뒤의 소소한 그러나 중요한 일상

중국은 우리와 지역도 이웃해 있지만, 문화도 비슷해서 ‘춘절’이라는 우리식 설이나, 그것에 못지않은 2대 명절로 10월 초에 지내는 ‘경국절’이 있다고 합니다. 춘절이 계절의 절기에 따라 지내는 명절이라면 국경절은 단어에서 드러나듯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을 기념하는 날인데, 굳이 비교하자면 우리 제헌절이나 개천절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 듯합니다. 중국을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국가라고 분류하는데 경제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면 영락없는 자본주의여서 ‘1국 2체제’라는 말이 그럴싸하게 들리기도 합니다. 더욱이 이런 명절이면 한국 사람들 못지않게 외국으로 여행을 많이 다닌다고 하는데, 지난 한 해 동안 해외여행을 한 중국인들이 1억 명에 이른다고 하네요. 그러니 이제 해외에 나가 구경도 하고 쇼핑도 하는 나라 중 중국을 빼면 섭섭할 것도 같습니다. 도대체 이 많은 사람이 어디를 가는 건지 궁금해지는데, 이쯤 해서 우리도 이들을 따라 여행길에 나서보지요. 이번 경국절이 아니라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거슬러 수천 년 전 당나라로 떠나 보겠습니다.

젊은이와 좁쌀의 꿈

당나라 현종(玄宗)이 황제에 올라 나라를 다스리던 첫해의 어느 날, 한 젊은 나그네가 지금의 허베이 성인 한단 성에 있는 여인숙에서 하루를 묵어가게 되었다. 그는 여인숙에서 도교의 제사장인 루웡이라고 부르는 이를 만났는데,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통하는 게 있어선지 곧 친해져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젊은이는 자신의 꿈은 엄청나게 큰 것이었는데 현실의 삶은 너무도 초라하다며 풀죽어 있었다. 루웡은 젊은이에게 자세히 말해보라고 하자 젊은이가 대답했다. “사나이가 살려면 굵게 살아야죠. 장군이나 장관이 되든지 아니면 부자가 되어서 인생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즐기는 거지요. 하지만 저는 지금 갈 곳조차 없습니다.” 그가 말을 끝냈을 때 너무 피곤해서 곧 잠에 떨어질 것처럼 보였다.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여인숙 주인은 좁쌀을 삶고 있었다. 젊은이의 얘기를 들은 뒤 루웡은 그에게 베게를 내밀었다. “내 베개를 베고 자시오. 그러면 당신의 모든 꿈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젊은이는 베개를 받더니 옷 벗는 것도 다 일스럽다는 듯 그대로 잠에 깊이 빠져들었다. 곧 그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꿈속에서 그는 부자인 추이 가문의 딸과 결혼해 호화스럽게 살았다. 이듬해 그는 과거 시험에 합격해 관리가 되었고 곧 승진에 승진을 거듭해 최고위 관리가 됐다. 그는 최고위 관리직을 넘어 마침내 재상의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그의 빠른 출세는 주위 다른 관리의 시기와 질투를 낳았고, 마침내 이들은 이제 재상이 된 그가 역모를 꾸미고 있다고 모함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체포돼 감옥에 갇히고 말았다. 그는 그의 부인에게 탄식하며 말했다. “오랫동안 나는 돈과 권력을 좇아왔는데, 결국 감옥이라니 도대체 무엇을 위해 그랬는지 모르겠오. 차라리 남루한 옷을 걸치고 내 검은 조랑말을 타고 한단으로 가는 길을 따라 내가 가고 싶은 곳이면 어디든지 가는 게 더 낫겠소.” 그는 상처가 너무 컸기에 자살까지 생각했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황제가 그를 사면시켜 멀리 귀양을 보냈다.

여러 해가 지난 뒤, 황제는 그가 겪은 모든 것이 모함으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황제는 그를 재상에 다시 임명하고 전보다도 더 큰 영예의 상과 많은 부상을 하사했다. 그의 다섯 아들과 열두 명의 손자들은 관리가 되어 더욱 큰 권력과 부를 쌓을 수 있게 되었다. 자손들이 영향력 있는 가문의 여자들과 혼인을 하자 그는 더욱 기뻤다. 그는 늙어가면서도 비옥한 땅과 여러 채의 저택과 값진 여러 마리의 말을 소유했으며, 또 아름다운 여인들의 시중을 받으며 살았다. 그는 이렇게 호화롭게 여생을 보냈고 여든이 넘어서 이승을 떠났다.

바로 이때 젊은이는 꿈에서 깨어났다. 그는 여전히 똑같은 여인숙에 루웡과 같이 있었고, 여인숙 주인이 올려놓은 좁쌀이 여전히 끓고 있었다. 이 풍경 안에서, 전광석화 같은 무언가에 얻어맞은 듯 전율했고 이내 깨달음을 얻었다.

<출처: Once Upon a Time in Asia, (Orbis Books, 2006)>

 

누가 보아도 ‘일장춘몽’이라는 말이 생각나게 하는 이야기로 보이네요. 그런데 이 젊은 친구의 꿈은 클라이맥스에서 깬 것이 아니라 호화롭게 일생을 보내고 여든이 넘어 이승으로 가는 대목에서 현실로 돌아왔으니 그리 안타까울 것도, 아쉬울 것도 없을 듯합니다. 죽음은 다 같은 삶의 끝인지라, 나이 고하를 떠나서 고통스럽고 두려운 것이겠지만 당시 여든이 될 정도면 꿈속에서도 자기 죽음에 대해 여러 번 생각했을 법하고, 만일 그랬다면 ‘여한이 없다’는 말을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 같습니다. 꿈 얘기를 하니까 배창호 감독의 <꿈>이라는 영화가 생각납니다. ‘국민 배우’ 안성기가 스님으로 나오고 그의 혼을 완전히 사로잡아 버릴 만큼 빼어난 미모의 여인으로 ‘컴퓨터 미인’ 황신혜가 상대역으로 등장하는 20년도 지난 제법 오래된 영화 말입니다. 두 선남선녀인 스타 배우의 러브스토리가 배경을 이루고 있지만 정작 이 영화는 운명적이고 극적인 절절한 남녀의 사랑 타령보다는 인간의 세속적 욕망이 그저 한바탕 허무한 꿈이었음을 왠지 슬퍼지는 노래와 빼어난 한국 자연의 아름다운 풍광에 녹여 보여준 것으로 기억됩니다. 이야기의 청년처럼 안성기도 깨어나 보니 절간에 누워있는 스님인 자신을 발견하는데, 깨달음을 얻었는지 아닌지 영화는 답을 주지 않고 거기서 끝나고 말지요.

젊은 나그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는 하지만, 깨어보니 여인숙 주인이 그가 잠들기 전 끊이고 있던 좁쌀이 그대로 하얀 김을 뿜으며 끓고 있었다고 이야기는 전합니다. 한마디로 현실에서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고, 있다면 오직 젊은이가 꿈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다는 사실 그 하나지요. 그야 젊은이에게는 그 사실이 더 중요하겠지만, 이런 얘기는 우리가 잘 아는 원효 대사의 ‘해골바가지 물’ 이야기에서 익히 들어서 사실은 익숙하고 물리기도 합니다. 그토록 맛있게 먹은 물이 해골에 담긴 물이라는 사실을 알고 토악질을 하면서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려 있다’는 깨달음에 이르렀다지요. 그래서 원효의 사상을 한마디로 일심(一心)이라고 한다고 합니다만, 저는 정말 마음만 그렇게 먹으면 모든 것이 달라지는지 좀 의심스럽습니다. 제가 원체 의심이 많아서가 아니라 마음을 바꿔먹어도 자신의 마음이나 의지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아서 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신가요? 저와 비슷한 분도 많으리라 생각하는데 선입견인가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그러니까, 원효의 이 일화에서 얘기되는 그 마음을 너무 한 개인의 마음으로 해석해 거기에 빗대어 모든 문제가 개인의 마음에서 온다는 식으로 논리를 확대하는 것은 좀 문제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는 거지요. 물론 한 개인의 마음이기도 하겠지만 ‘너와 나’라는 관계 속에 이루어지는 ‘그 무엇’도 포함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더 분명하게 든다는 말씀입니다. 영성이 깊다는 종교인들도 마음에 대해서 원효와 같은 말을 자주 하는 것을 보면서, 그러면 왜 원효는 깨달음을 얻고 난 뒤에 마음에 온통 집중하라고 가르치는 대신 스스로 파계하고 ‘새 하늘 새 땅이 오도록’ 아미타불에게 빌라고, ‘아미타불’을 염하라고 중생들에게 가는 곳마다 가르쳤을까 무척 궁금해집니다.

이야기로 돌아가서, 젊은 나그네가 깨친 깨달음이 무엇인지 말하고 있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앞서 말했듯이 이야기는 그가 잠들기 전 좁쌀이 끊고 있는 상황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혹시 이야기의 핵심이 여기에 있는 것은 아닐까요. 꿈을 통한 깨달음도 중요하겠지만, 그 뒤에도 가야 할 길, 살아야 할 일상의 삶이 온전히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정작 중요하다고 보입니다. 깨달음 전후도 여전히 상식의 세계에서 타인과 함께 살고 있으며 자신의 깨달음은 그 세계 안에서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어쨌든 크게 깨친 젊은이가 좁쌀 밥이나 죽을 먹은 뒤에 다시 가야하는 길을 위해 단단히 나설 차비를 하는 모습을 그리며 이야기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좀 끝을 재미있게 맺으려 했는데, 밑천이 없는 사람이 이야기꾼이 되려니 어렵다는 것을 오늘 새삼 다시 느낍니다. 그래도 애는 쓰고 있다고 응원해 주시기를 바라며, 낙엽이 벌써 져버릴 것 같은 초겨울을 재촉하는 11월에 뵙겠습니다.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4년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