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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와 이스완티에게 박수를! “성직자는 먼저 평신도와 평등한 대화를 위해 노력해야 마땅하지요” [생활하는 신학-황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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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훈/아시아 평화 연대 센터장

 

만리(Man Lee)와 이스완티(Iswanti)는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서 활동하는 교회 활동가다. 만리는 교구대학생 연합회 간사로 일하고 있고 이스완티는 오랫동안 여성 인권 문제를 붙들고 씨름해왔다. 내가 기억하기로 이 둘이 각각 발표할 당시 가장 큰 박수를 받았는데, 왜 참가자들이 그들에게 박수를 보냈는가가 오늘 얘기해보고 싶은 이야기 거리다.

지난 10월 3-7일 서강대와 분도 피정의 집에서 열린 아시아 신학포럼을 마치고 참가자 가운데 약 15명의 청년과 선생들은 합정동 아피 센터로 옮겨 아시아 청년 활동가 워크숍을 했다. 신학포럼이 끝나자마자 양수리 두물머리로 가서 그곳 농민과 사제들, 평신도들과 함께 미사를 드렸다. 현정권이 4대강 사업으로 4대강권역 많은 곳을 함부로 손대어 댐처럼 보이는 많은 보를 준설했지만, 이곳은 끝까지 남아 싸워온 4가구 덕분인지 아직 손을 못대고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이스완티 “여성신학이 내 인생을 망쳐놨어요!”

▲ 이스완티(Iswanti).

이스완티는 꽤 무거워 보이는 전문 사진가나 사용하겠다 싶은 사진기로 사진 찍는데 온통 정신이 팔려 있어 미사가 시작하는 지도 모르는 듯했다.
“사진에 관심이 많은 가봐. 뭘 그렇게 찍어요?”
“사진을 찍지 않았으면…, 벌써 자살했을 거예요.”
“에이~ 농담도 진짜처럼 하네.”

이스완티는 농담이 아니었다. 두물머리에서 숙소로 돌아와서 워크숍에 참가했을 때도 몇 번씩 그 얘기를 했다. “난 상냥하고 이웃에서도 좋은 아이로 통했어요. 대학 다닐 때도 그랬는데, 여성문제가.. 여성신학이 내 인생을 망쳐놨어요!” 사실 망쳐 놓은 것은 이스완티의 인생이 아니라 무조건 상냥하고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의 이미지였는데, 이제는 인도네시아라는 세계최대의 이슬람 국가에서 한 줌도 안되는 그리스도교, 그 안에서도 여성의 인권을 위해 싸우는 투사로서 그 일상의 짊이 너무도 고난하고 힘들어 벗어 버리고 싶고 옛날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그렇게 얘기한 듯했다. 워크숍에 앞서 열렸던 신학 포럼에서도 이스완티는 거리낌이 없었다.

“종교간의 대화를 말하지만, 교회가 종교분쟁을 해소하기 위해 일한다고 말하기는 어려워요. 교회 자체가 분쟁의 원인이고 걸림돌이기 때문이에요.”
“그래도 교회가 분쟁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데, 분쟁의 원인이 된다는 말은 좀 그렇지 않습니까?” 한 주교가 말을 받았다.

“저는 이런 회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회의 때는 뭔가 다 될 것처럼 얘기하고 교회로 돌아가보면, 변한 건 하나도 없어요. 이슬람이 여성을 차별하는 거나 교회가 여성 신도를 차별하는 거나 똑같아요. 그런 차별의식으로 교회 밖의 문제를 어떻게 풀 수 있겠어요?”
“그래도 교회는 가난한 이들, 불구자들을 많이 돕고 있습니다. 그건 사실이고 제가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주교가 다시 말을 받았는데, 이스완티가 제기한 여성문제와는 다른 대답이어서 대화는 더 이어지지 않았다.

만리 “성직자는 먼저 평신도와 평등한 대화를 위해 노력해야 마땅하지요”

▲ 만리(Liew Man Lee).

만리는 대학 4년을 오롯이 가톨릭학생운동에 투신하고 뜻한바가 있어서, 학생들의 선배요, 도움이로 간사활동을 해왔다. 쿠알라룸푸르 뒤편에 붙은 페낭교구에서 일해 온 만리는 요즘 청년들처럼 자유분망하고 의사표현에서 거침이 없었다. 이스완티처럼 경험이 많지는 않았지만 이제 이십대 중반의 나이로 참가자들 가운데서도 어린 편에 속했다. 만리는 나라별 발표에서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말레이시아는 다인종, 다문화, 다종교 사회여서 종교간 대화가 매우 중요해요. 그런데 불행히도 교회에서는, 작게는 저희 교구에서는 이런 대화를 실천하도록 격려하거나 지원하지 않고 있어요.”
“누가 교회인가요? 우리가 교회잖아요. 그러니 자꾸 다른 데를 향해 교회라고 하면서 남의 탓 하지 맙시다.” 한 사제 신학자가 끼어들었다.

“대화, 말이야 좋지요. 그런데 대화는 항상 이런 포럼이나 회의로 끝나고 그것도 거의 성직자만 참가하지요. 교회가 청년에게 사회정의나 종교문화간 대화에 참가하라고 하지 않아요. 오히려 말레이시아 전국가톨릭학생운동(MCSM)을 해체해 버렸어요. 교회가…현시대랑 거꾸로 가고 있어요.”

만리는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몇 번 친 뒤 얘기를 계속했다.“교회 안에서 성직자 평신도 사이의 대화는 용납되지 않아요. 같은 신앙을 지녔는데도 말이에요. 그런데도 가치와 믿음이 다른 종교인들과 어떻게 대화를 하겠다는 건지 이해가 안가요. 종교간 대화를 말하기 전에, 교회 성직자는 먼저 평신도와 평등한 대화를 위해 노력해야 마땅하지요.” 이 말에 많은 참가자들이 박수를 쳤다.

이 자리에 초청받은 이들은 이미 그 정도는 다 알만한 식견과 경험이 있음에도 만리에게 박수를 보낸 것은 아마도 만리가 아시아의 가난한 이들 가운데 가장 가난한 여성의 한 명이요, 젊은이였기 때문이리라. 만리에게서 꺼져가는 교회의 불씨를 살릴 희망을 보고 싶은 자신들의 열망이 거의 반사적으로 그렇게 박수를 치게 했는지도 모른다.

립서비스요 위선적인 수사에 지나지 않는..
‘평신도 지도자 양성과 평등한 파트너십’

이 워크숍에 지도자로 함께 한 데스몬드 신부가 워크숍 끝자락에서 한마디를 보탰다. “교회 내에서 일하는 이들에게 교회가 정당한 임금을 지불하기 전까지는, 사회를 향해 노동자의 인권 얘기를 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런 상황에 있는 성직자들에게 사회교리는 신자들에게 최대의 비밀로 붙여야 할 금서가 되기도 한다”고 했다. ‘내가 그렇게 하지 못하기 때문에 남에게도 말하지 못한다’고 함은 그래도 순진한 구석이 남아 있다는 말이 된다.

한진중공업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김진숙이 고공농성을 벌일 때 달려간 이들 가운데 성직자들이 꽤 있음에도, 교회 안에 있는 제2, 제3의 김진숙은 보지 못하고, 안 보려 하는 것은 무지 때문이기도 하고, 설치류로 비유되는 정권 아래서 배운 뻔뻔함과 파렴치함 때문이기도 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냐고 묻지를 말고 한국 제도교회의 현실을 둘러보면 너무도 빈번히, 심지어 교회내 진보적인 기구에서조차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음을 곧 알게 된다.

이런 일들이 가능하려면, 교회 내에서 평신도와 성직자의 관계는 항상 수직적으로 대화가 아니라 명령과 복종만이 있어야 한다. 평신도 지도자 양성과 평등한 파트너십은 립서비스요 위선적인 수사에 지나지 않는다. 평신도는 성직자보다 항상 낮은 위치에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똑똑해져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언어도단의 이 지경을 우리 교회에서 흔하게 목격하는 것은 어쩌면 제도 교회가 생존하는 유일한 방식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면 만리와 이스완티로 다시 돌아가서, 이 중세 원시림의 세계에서 무언가를 해보려 하는 이들은 도대체 누구이며 무엇을 하려 남아 있는 것인가? 바다위를 걷고, 마귀를 쫓아내며 온갖 병을 치유하는 것이 예수 시대의 기적이라면, 만리와 이스완티가 삶의 구석구석에서 감당하기조차 힘에 겨운 짐을 지고서도 파란 불꽃을 튀기며, 늘 자신이 아니라 하느님에게로 돌아서는 그 순간순간이 기적이요, 하느님의 영이 함께 하는 카이로스, 곧 은총의 때가 아니고 무엇인가!

포스트 모던 사회에서 평신도의 정체성과 신앙과 사도직이 중요한 것은 바로 살신성인의 영웅이나 성인이 아니라 일상에서 이런 기적을 만들어가는 만리와 이스완티의 삶, 아니 아시아 전체 민중의 삶이 기적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만리와 이스완티에게 하느님의 축복이 늘 함께 하기를….

가톨릭 뉴스 지금 여기 2011.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