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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아시아신학에 주목하는가? [인터뷰] 우리신학연구소 아시아신학연대 센터 황경훈 실장 5월 18일 오후 5시 가톨릭청년회관에서 인도 신학자 아말라도스 신부 강연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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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자/우리신학연구소 <갈라진 시대의 기쁜소식> 편집자

‘우물 안 개구리’,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바로 내 이야기다. 2005년부터 시작된 연구소 부설기관 ‘아시아신학연대센터’. 국제행사를 위해 신학자는 만나야 하는데, 고소공포증이라 비행기만 타면 와인에 취해 잠을 청해야 했던 황경훈 실장의 비하인드 스토리만 기억하던 내게, 오늘 인터뷰는 진짜 ‘아시아신학연대센터’를 피부로 느낄 수 있던 시간이었다. 이래서 ‘알면 보이고 보이면 사랑하게 되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이미 예전과 같지 않으리라’고 했나? 오늘에서야 깨달은 아시아의 진주, ‘아시아신학연대센터’의 황경훈 실장을 만났다.

김옥자: 아시아신학연대센터(CATS : Center for Asian Theology Solidarity, 이하 ‘신학센터’)를 설립하게 된 목적과 배경이 궁금해요.

▲ 아시아신학연대센터 황경훈 실장

황경훈: 1997년 우리신학연구소에서 IMF 관련 국제 심포지엄(‘IMF 시대의 사목환경 변화와 교회의 역할’)을 하면서 연구소가 아시아 차원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그때 연구소 연구원이었던 이성훈 씨가 이크미카(Pax-Romana ICMICA 국제가톨릭지식인문화운동) 사무총장이었는데, 그분과 프랑스 CCFD에서 일하던 곽은경 씨 하고 여러 사람이 고민을 함께 나누었어요.

그러다 2004년에 당시 연구소 소장이던 박영대 전 소장과 엄기호 연구위원, 저 이렇게 셋이 모여서 실질적이고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아시아교회와 아시아신학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장을 만들자. 그러면 연구소도 아시아에 대해 조금 더 적극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겠다’는 의견이 모아졌고, 아시아 교회와 호흡하면서 배우고 나누려고 시작하게 되었죠. 2005년부터 곽은경 씨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CCFD에서 후원을 받기 시작한 것도 큰 도움이 되었구요. 당시 저는 아시아가톨릭뉴스(UCA News)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어서 아시아 교회의 흐름, 활동가, 신학자들에 대해 스크랩해놓은 자료들이 꽤 있었고 이들의 네트워크를 만들어가는 데 아주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었어요.

연구소의 목적이 ‘우리’ 신학을 하는 것이라면, 이를 위해 다른 아시아 나라의 신학자들에게 배우는 일은 아주 필요하고, 또 이들의 신학과 경험은 한국 천주교 신자들에게도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기자생활을 하시면서 함께 일하셨다는데 그 일이 가능한가요?

저는 우리신학연구소 설립 때부터 함께해왔기 때문에, ‘평신도 연구소’라는 전망은 기자로 일하면서도 한 번도 잊어 본 적이 없어요. 때로는 힘들고 짬내기도 어려웠던 적도 있지만, 휴가를 활용하면서 자원봉사 개념으로 함께해왔어요. 쉽지 않았지만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오히려 저에게는 활력이 되었죠.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그런데 ‘아시아신학’ 하면 사실 일반 신자들에게는 생소할 수도 있는데요,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아시아 신학이란 어떤 것인가요?

아시아신학을 이야기하려면 조금 근본적인 것부터 말씀드려야 하겠는데요, 편집자님은 혹시 점집에 가 본 적이 있으신가요?

네? 아~ 음~ 있어요. 뭐 기복적인 걸 바라고 간 건 아니고, 하도 사는 게 힘들길래 사주에 문제가 있는 건가 싶었거든요.

네. 사실 그런 마음이 종교를 떠나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이 공유하는 정서가 아닌가 해요. 한국 사람들은 아시아의 어떤 나라보다도 종교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심층 밑바닥에는 무속신앙이 있어서 어려운 일이 닥치면 점집에 가기도 하고, 결혼 전에 궁합도 많이 보죠. 또 실생활에서는 무의식중에도 유교적인 질서를 따라 살구요. 명절날이면 지내는 제사가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죠. 철학적으로는 매우 불교적이어서, ‘이심전심’, ‘눈빛만 봐도 안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통용되듯이 말보다는 느낌이나 직관으로 판단하는 경우도 많구요.

이렇듯 상당히 중층적이고 복합적인 문화와 종교성을 갖고 있는 민족이 한국 사람들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종교, 문화적 바탕 위에서 ‘그리스도교 신자가 된다’는 것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가를 깊이 생각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그리스도교 신앙을 받아들이고 신앙이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토착화’가 여러 면에서 필요한 것이지만, 신앙과 관련해서는 자신의 실존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아주 중요하다고 봅니다. 종교, 문화적 바탕이나 뿌리에 대한 고민 없는 순수한 그리스도교인은 있을 수 없어요. 그건 마찬가지로 순수한 불교인도, 순수한 진공상태의 이슬람교인도 없다는 말과 같죠.

아시아신학을 한다는 의미는 ‘너는 인도라는 바탕으로 인도신학을 가져오고, 나는 한국을 바탕으로 한국신학을 가져와 함께 나누자’는 의미인 거죠. 인류의 위대한 대종교가 거의 다 아시아에서 나오지 않았습니까? 참으로 풍요로운 종교적 바탕이 있는 곳이죠. 그런 아시아인들이 모여 서로 주고받으면서 발전해가자는 게 저희 센터의 방향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아시아신학은 한국신학을 어떻게 본격적으로 할 수 있는지, 아시아차원에서 어떻게 나눌 수 있는지의 문제에요. 한국, 중국, 베트남, 인도, 스리랑카 등의 신학자와 활동가들이 모여서 나누게 되면 그 역동성은 라틴아메리카의 해방신학보다도 더 영향력이 있을 거라고 봅니다. 흔히 사람들은 신학하면 이론으로만 생각하기도 하는데 이론과 실천의 관계는, 이론이 실천을 끌어주고 실천 속에서 그 이론이 검증되는 것이거든요. 만약 이론이 허무맹랑하고 실효성이 없다면 결국 없어지고 말죠.

그런 면에서 활동가들은 신학을 공부해야 하고, 신학자들은 끊임없이 현장과의 끈을 놓치면 안 돼요. 쉬운 예로 종교간 대화를 들 수 있겠는데요, 필리핀이나 인도 같은 곳도 잘 교육받은 학자, 부유하게 사는 성직자들이 만나서 ‘잘 지내보자’ 정도로 악수하고 밥 먹는 걸 종교간 대화라고 하는데, 그건 종교간 대화의 참모습이 아니에요. 진짜 종교간 대화는 일반인들 삶속에서 이루어져야 하고 신학자들은 그 토대를 제공해주고 쉬운 말로 풀어주어야 하죠. 실질적으로 삶의 현장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심성을 파악하지 못하면 그들의 얘기를 할 수 없고, 한다고 해도 결국 ‘말잔치’일 뿐이에요.

아시아신학은 곧 한국신학을 잘하기 위한 것이다. 참 새로운 말씀이네요. 저만 해도 아시아신학 하면 그저 아시아인들이 모여서 하나의 신학을 만드는 게 아닌가 생각했거든요.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할 때 그런 바탕을 생각해야 하죠. 그리고 생각한다는 것은 공부해야 한다는 것인데요, 자기가 유교적으로 생각한다면서도 유교가 뭔지 모를 수 있잖아요. 실은 유교적 사상에도 좋은 것도 있고 한계도 있는데, 그걸 모르면 극복할 수도 없거든요.

신학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교 전통을 알아야 하는데, 아우구스티누스, 토마스 아퀴나스를 비롯해, 현대의 한스 큉, 발터 카스퍼 등과 같은 신학자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가장 중요하게 말했던 것, 교부나 교황들이 말한 사회교리, 그리고 우리가 가장 가깝게 만나는 성서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알아야 하는 것이죠.

아시아신학은 각 나라 신학을 섞어서 하나의 신학을 만드는 게 아니에요. 제대로 된 신학을 하기 위해서는 자기 종교와 문화 전통을 그리스도교의 전통과 오늘 벌어지는 문제를 통해 녹여내야 하고, 그렇지 않다면 제대로 된 신학이라 할 수 없는 것이죠. 따라서 ‘신학센터’ 역시 한국신학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고, 그걸 지향하기에 저는 끊임없이, 불교, 유교, 도교 공부모임에 참가해 배우는 거죠. 혹자는 저 보고 혹시 그 길로 나가는 게 아니냐는 농담도 하는데, 신학을 공부하는 저에게는 불교가 어떤 종교성으로 한국인들 심성 안으로 스며들었는지, 유교가 어떤 식으로 사람들과 소통하는지, 도교의 가르침은 무엇인지 아는 것은 아주 중요하죠. 그런 공부들을 통해, 제 자신을 보기도 하고요.

2008년도인가요, ‘신학센터’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적이 있 었는데요. 그때 이야기 좀 해주세요.

2008년에 종교간 대화 형식으로 국제 심포지엄을 했는데 많은 주류 언론에서 관심을 갖고 보도를 한 적이 있지요. 그때 토론회 주제가 ‘지금 여기, 구원은 어떻게?’였고, 피터 C. 판(Peter C. Phan)이라는 베트남계 미국인 신학자와 우리나라에서 존경 받고, 행동하는 신학자들이 한 곳에 모였던 자리로 성과가 큰 행사였어요.

구원의 문제를 단지 한 나라의 차원이 아니라 여러 차원으로 볼 수 있었는데, 전엔 어디서도 시도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어렵지 않을까 싶어요. 그때 모셨던 분들이 가톨릭의 정양모 신부님, 불교의 도법 스님, 개신교의 이현주 목사님이셨는데요. 주로 이야기는 다종교사회에서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또 이런 상황에서 구원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을 나누었죠.

그때 그분들이 말씀하셨던 구원은 어떤 것이었나요?

피터판 신부님은 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그래도 그리스도교를 통해서 구원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도법 스님은 ‘집안이나 동네에서 싸움이 나더라도 각각의 믿음과 경전을 가져와서 문제를 푸는 건 없다. 서로 만나 대화로 푼다’며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했어요.

종교다원주의 입장이신 정양모 신부님은, ‘아시아 같은 종교다원사회에서 예수 그리스도만을 통해서 구원에 이른다고 말하는 것은 상당히 도발적인 것이다. 초대교회 일부 전통이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말했는데, 예수 스스로는 하느님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고 하셨어요.

그때 사회를 보셨던 길희성 교수님도 정양모 신부님과 같은 종교다원주의 입장이셨는데요, 두 분 모두 아시아처럼 다종교 사회에서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선포하는 문제는 굉장히 조심스러워야 하고, 독점적인 진리처럼 선포하는 건 옳지 못하다고 이야기하셨어요.

저도 그때 참석했지만 참 꿈같은 자리가 아니었나 싶어요.

네. 전 우리신학연구소라서 가능했던 일이었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동안 많은 국제행사를 하셨던데요. 기억에 남는 행사나 성과를 말씀하신다면.

거의 다 기억나고, 모두 의미 있었는데요, 설립 첫 해 했던 행사는 이전에 FABC 인간발전 사무국에서 일하셨던 인도의 데스몬드 드수자 신부님하고 리드 쉘톤 페르디난도라는 스리랑카의 정의평화와 인권 문제를 위해 일하시는 두 신부님을 초대해서 <사목헌장> 반포 40주년 기념 심포지엄을 했어요. ‘신학센터’로는 처음으로 한 국제행사였지요.

그 후 2006년 5월에는 파문당한 여성 사제이며 여성 신학자인 크리스찬 마이어를 초대해 ‘교회 여성과 제자 직분’이란 주제의 강연회를 했어요, 그때도 이웃 종교들과 연대했는데, 개신교 목사, 성공회 여성사제, 원불교 교무님 등이 모여서 의미 있는 자리를 가졌죠. 같은 해 10월에는 ‘교회 쇄신과 가톨릭교회의 리더십’이라는 주제로 필리핀 인판타 교회의 마리오 종신부제를 초청했는데, 인판타 교구는 정말 기초공동체의 종결판이라 할 정도로 멋진 구조로 이루어져 있어요. 우리 교회가 소공동체 운동을 열심히 해오긴 했는데, 실질적인 성과가 있었는지는 미지수에요. 인판타에서는 보통 교구 차원의 정책 결정을 심의할 때, 대부분 평신도들로 이루어진 43명의 위원회에서 토론하고 결정하죠. 한국의 작은 교구들에서도 충분히 시도해볼 만하다고 생각해요.

2007년에는 파키스탄의 평신도 연구소 소장하고 사무총장을 초대해 평신도 양성이 왜 중요한지 이야기했고, 2009년에는 아시아주교회의 총회에 앞서서 주교님들에게 성체에 대한 현장의 목소리를 알리는 자리를 가지기도 했어요. 그 외에도 많은 만남과 행사가 있었죠.

성과라면 올해가 햇수로 8년째인데, 종교간 대화라는 게 중요하다는 걸 대외적으로 알렸다는 거죠. 특히 작년에는 4대강 관련해 필리핀 민다나오 섬에서 원주민들과 생태운동에 투신하신 가스퍼 수사님과 지율 스님, 개신교 목사님을 모셔서 현실에 대한 고민을 함께했었는데, 끝없이 막다른 길로 달려가는 신자유주의 세상에서 각 종교인들이 모여서 함께 고민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종교간 대화를 정의나 생태계 문제에서 함께 고민하고, 비록 파문되었긴 했지만 여성 사제를 초청해 교회 내 여성들의 위치와 역할에 대해 각 종교인들이 모여서 생각을 나눌 수 있었던 건 우리신학연구소에서 말하는 이슈들을 연결하고 확대시킨 일이었어요.

처음엔 비록 전 소장님의 제의에 의해 시작하셨지만, 8년 내내 참 열정적으로 일해오신 것 같은데요. 그 동력은 무엇일까요?

제가 연구소의 초창기 멤버로 함께 시작할 때 연구소에서는 청년 성서공동체 운동을 했었어요. 그때 박현준 전 소장님과 함께했었는데, 처음에는 꽤 잘 진행되었고, 본당에 전파력도 컸어요. 당시는 민주화의 열기가 남아있을 때여서인지 성서운동도 신선하게 받아들여졌죠. 하지만 5년 여 정도 지나니 시대의 변화를 쫓아가지 못하는 등 여러 가지 상황들이 겹치면서 ‘본당 중심의 성서운동을 계속해야 하는가’는 회의가 들면서, 전망이 보이지 않아 답답했어요. 그러다 이런 저런 과정을 거쳐 필리핀에 가서 신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게 되었고, 정말 눈앞이 확 틔는 느낌, 영어도 어려웠지만 열심히 하게 되고, 너무나 큰 행복감을 느꼈어요. 신학이 주는 행복이었죠.

가톨릭 가정에서 나고 자라면서 경험해온 신앙의 의미를 거기서 다 성찰했던 거 같아요. 공부를 마치고 난 뒤 아시아가톨릭뉴스에 다시 복직했고, 연구소 신학센터장으로 일하면서 기사에서만 봤던 훌륭한 신학자들을 각 나라에 찾아가 만나고 초청해 행사도 하면서 너무나 좋았어요.

4월 25-5월 1일까지는 우리신학연구소와 이크미카에서 주관한 말레이시아 행사에 가는데 아마 거기에서도 살아나는 듯한 생동감을 느낄 수 있을 거라 기대해요. 한마디로 제 일의 동력은 신앙과 신학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제게 신학과 신앙은 떼어 낼 수 없는 기도 같은 거예요. 사람에 따라 하느님과 만나는 방식이 다를 텐데요, 연민이 많은 사람은 사람을 통해서, 미적 감각이 뛰어난 사람은 아름다운 것을 통해서, 지적인 사람은 지적인 충만감을 통해 하느님과 만나는데 그게 바로 영성이죠. 영성은 신학과 신앙의 만남이고, 우리의 의식이 결국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는 것이지요. 좀 어렵게 느껴지지만 우리 모든 사람들도 끊임없이 자기를 수련해가면 그런 순간이 올 거라 생각해요. 기도를 할 때 많은 분심이 들기도 하지만, 예수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일치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거든요.

앞으로 ‘신학센터’의 과제라면 어떤 걸까요?

앞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한국신학을 제대로 잘하기 위한 차원을 아시아차원으로 확대하는 것이 하나이고, 또 다른 하나는 후진 양성 문제에요. 제 경우도 그랬지만 바로 앞만 보고서는 전망을 가지기가 어렵거든요. 한국을 비롯해 아시아 교회 활동가들의 양성은 아주 시급해요. 이건 굉장히 실천적인 것이고 바로 우리신학연구소의 지향과도 일치하지요. 이번에 말레이시아에서 하는 행사도 교육프로그램인데, 아시아주교회의(FABC) 사목 지침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여성, 이주민을 주제로 열려요. 젊은 사회사목 종사자들을 모아서 그들에게 과제를 내주고, 공부하게 하면서 훈련을 시키는 거지요. 길지 않은 기간이지만 신학과 사회교리로 무장시켜 현장으로 나가는 힘을 주기에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라 봅니다.

10월에도 큰 행사가 있다고 들었어요.

내년이 2차 바티칸공의회 50주년이고, FABC 설립 40주년이에요. 그래서 FABC신학에 대한 성찰과 앞으로 아시아신학이 어떤 방식으로 나갈 것인가를 성찰하는 시간을 가지려 해요. 미래에 중점을 두고 여는 행사인데, 아시아 주교연합에서 기본정신으로 이야기하는 삼중대화 ‘가난‧종교‧문화와의 대화’를 주제로 ‘여성 ․ 생태 ․ 청년 ․ 이주민 ․ 가정 등’의 분야로 나눠 아시아 국가의 활동가, 신학자 등을 초대해 이야기하게 될 거예요.

행사에 소요되는 비용은 어떻게 지원되나요?

네. 사실 그것도 고민이에요. 설립당시부터 지금까지는 프랑스 평신도 운동단체인 CCFD에서만 받았는데 CCFD는 빈곤과 개발문제에 관심을 갖고 지원하는 곳이거든요. 그때도 이미 한국이 개발도상국이 아니라 지원대상이 아닌데, 신학운동에 대한 동아시아의 허브 역할을 해달라는 의미로 특별 지원되었던 것이었고 꽤 오래 지원해주었죠. 하지만 앞으로는 아무래도 어려워질 것 같아서 국내 지원을 받아야 해요. 하지만 이런 저희 일을 사람들이 얼마나 인지하고 얼마나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평가해줄지 잘 모르겠어요. 제도교회도 아시아교회를 이야기하지만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않거든요.

저 멀리 ‘프랑스 평신도운동단체’가, ‘아시아신학’을 하라고 ‘한국에 있는 연구소’에 지원을 해준다. 참 아이러니하네요. 하지만 오늘 하신 말씀처럼 아시아신학이 바로 ‘우리신학’ 한국인의 신학을 잘하기 위한 것임이 잘 홍보된다면 의외로 많은 지원들도 가능할거란 생각이 듭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가톨릭 뉴스 지금 여기 2011.0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