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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문화 바꾸기 – 전례와 언어 6 : ‘봉사’와 ‘참여’ 사이

[교황 프란치스코와 하느님의 백성 – 황경훈]

교회와 가장 잘 어울리는 말 중에 ‘봉사’가 있다. 어쩌면 교회가 부침 많은 2000년의 역사를 살아오면서도 그 어느 조직보다도 왕성하고 강인한 생명력으로 생존할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이 봉사라는 이 한 마디 안에 응축되어 있는 것 같다. 인간적인 견지에서 보면 그렇다는 말이다. 무엇이 수많은 신자들을 크고 작은 봉사활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하고, 또 한 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든 노동을 기꺼이 하게 하는 것일까. ‘봉사하다’는 그리스어로 ‘디아코네인’, 곧 ‘식탁에서 시중드는 것’을 뜻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교회적 기원을 따질 때 디아코네인의 뜻을 갖는 이 봉사라는 말은 식탁에서 밥 먹는 사람의 생명에 봉사한다는 뜻이 된다. 이를 에누리해서 좀 더 넓게 해석하여 인간의 생명뿐 아니라 우주의 모든 생명체를 위한 육체적, 정신적 활동을 봉사라고 한다면, 어쩌면 우리는 의식, 무의식 중에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일반화한다고 하더라도 봉사의 핵심은 역시 그 ‘자발성’에 있다고 보인다. 교회 안의 수많은 봉사들이 이러한 자발성에 기초하고 있는가를 물으면 이야기는 또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경남 산청군 지리산 자락에는 ‘성심인애원’이 있다. 음성 나환자촌으로 대학생 시절에는 ‘성심인애병원’으로 불렸는데, 학교 가톨릭 동아리에서 여름방학마다 ‘봉사활동’을 열흘 정도씩 하던 곳이었다. 지금은 겉모습도 많이 달라졌고 봉사하러 오는 이들도 크게 늘었다고 들었지만, 30년 전 당시에는 음성 나환자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사시는 조그마한 마을이었다. 봉사활동은 우연한 계기로 시작되었다. 비가 억수같이 퍼붓던 어느 날, 돌아가신 시아버지의 관을 소달구지에 싣고 마을 꼭대기에 있는 공동묘지로 서둘러 올라가다가 소가 진흙탕 길에 미끌어지는 바람에 관도, 달구지도 아래로 미끄러지자 며느리가 대성통곡을 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를 어찌어찌 전해 듣게 된 동아리의 한 선배가 현장을 한 번 다녀오더니 그 해부터 성심인애원으로 봉사활동을 하기로 결정하고, 마을에서 공동묘지까지 시멘트 도로포장을 하는 일을 해마다 하게 되었다. 육체적으로 고된 일이었고 경험도 없는 상태에서 너무 무리한 노동으로 다음 날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서로를 격려하고 상대방을 위해 자기가 더 많이 일하려고 애쓰는 ‘뜨거운’ 유대감을 경험하곤 했다.

저녁에는 ‘환우 방문’이라는 이름으로 2-3명씩 조를 짜서 집집마다 방문했다. 손가락 마디가 없는데도 굳이 계란 껍질을 까서 주시는 바람에, 가뜩이나 한센병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 버리지 못한 신입생들은 ‘이거 먹어야만 돼요?’라는 절박한 눈길로 선배들을 쳐다보면 선배들이 대신 받아서 맛있게 먹음으로써 ‘상황이 종료되는’ 경우도 흔했다. 장대비로 남강 물이 불어 강기슭에 늘어서 있던 돼지 축사에 물이 차서 새벽에 돼지를 구하다가 발에 차이거나, 그 무서운 물이 100미터가 넘는 대형다리를 해마다 끊어뜨리는 바람에 절벽 같은 길을 아슬아슬하게 돌아가던 일들은 이 봉사활동이 쉽지 않았음을 생생하게 기억하게 한다.

그런데도 여름방학 때마다, 심지어 수배 중이거나 나중에 사면되어 군 복무 중에도 휴가기간을 조정해 참가한 것을 생각하면, 그 이유를 한마디로 명쾌하게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분명 거기에 뭔가가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 ‘봉사’는 한센병 할머니, 할아버지의 ‘천형 같은 삶’과의 대면, 이들에 대한 연민과 동정, 또 인간 삶의 비루함 등이 뒤범벅이 되어 알 수 없이 북받쳐 흘리던 눈물, 구슬땀을 흘려 가며 함께 일하던 선후배의 유대감…. 그 모든 여정 안에 벌어졌던 순간순간 안에서 하느님을 더 깊이 만난 것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마치 ‘봉사 중독’처럼 해마다 하느님을 만나러 많은 어려움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간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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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을 살리는 일이 어디 식탁 봉사뿐이겠는가.

교회와 관련된 봉사가 아니더라도 자원봉사 활동을 하는 이들이 ‘봉사할 수 있게 해 준 것에 도리어 감사하다’는 말은 이제 낯익은 레퍼토리가 되었다. 봉사를 통해 상대방과의 일치는 물론이고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의 계기를 주어 자신이 누구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겠다는 것까지 깨달아 덤으로 얻어 간다면 이제 봉사는 봉사가 아닌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일반 사회나 교회에서도 봉사는 늘 필요하다. 특히 그리스도인의 처지에서 볼 때 신앙은 성장해야 하는 것이므로 하느님을 더 깊이 만나기 위해서라도 봉사는 필요하다. 이를 통해 ‘봉사자’는 모든 이의 생명에 봉사할 마음을 키우는 것이다. 독일 베네딕도회의 안셀름 그륀 신부는 말한다. “식탁에서 시중드는 사람은 생명에 봉사한다. 훌륭한 식탁 봉사자는…. 사람들이 기쁘게 먹고 마시며 생명의 활기를 체험하여 신나게 살아가도록 봉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생명을 살리는 일이 어디 식탁 봉사뿐이겠는가.

언제부터인가 ‘봉사’는 짊이 되어 가고 구역/반장, 교리교사, 성가대 지휘자 및 단원 등을 구하기에 어려움을 겪는 본당이 늘고 있다. 많은 ‘봉사자’가 중산층의 전업주부로 대체되고 있는 것은 교회의 현실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불가피한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꼭 필요한 일이나 자리에 봉사자가 없어서 어려움을 겪는다면 소명의식이 확고하고 책임감 있는 이들을 채용하고 정당한 임금을 지불하면 된다. 한국 교회가 부자라는 말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닌데도 그 정도의 투자를 아까워한다면 하느님을 섬기는 교회라 말하기 어렵다.

외국에서 오랫동안 자비를 들여 어렵게 공부하고 돌아온 평신도 신학자에게 ‘이제 공부 마쳤으니 교회에 봉사하라’고 말하기 전에 그가 ‘참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배려해야 한다. 교회 안의 ‘봉사’에만 묶어 둘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상처받고 버림받아 죽어가는 모든 이들과 우주의 피조물의 치유를 위해 평신도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지금 교회가 해야 할 매우 중차대한 과제다. 과거 2000년 동안 ‘교회가 누구인가’를 물어 왔다면 이제는 ‘교회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공공영역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물어야 한다. 바로 그러한 이유로 우리는 수천 개, 수만 개의 다양한 형태와 기능을 가진 ‘야전병원’이 필요하며 그 일을 열정적으로 수행할 평신도가 필요하다. 교회의 미래는 여기에 달려 있지 않을까. 아니 바로 이것이야말로 교회가 아닐까.